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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과 믿음으로 브랜드가치를 높여가는 법무법인 ‘바른’ - 김동건 법무법인 ‘바른’ 대표 변호사「장욱진미술문화재단」 이사장 취임
  • 기사등록 2012-02-13 10:58:48
  • 기사수정 2012-02-13 11: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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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중섭 ,김환기 화백 등과 함께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의 선구자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고 장욱진(張旭鎭) 화백 (1917~1990)의 유업을 기리며 고인의 유작 등을 상설 전시할 수 있는

‘장욱진 미술관 건립’ 추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경기도 양주 시와 공동으로 추진 중인 미술관 건립은 ‘장욱진미술문화재단’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업으로

20세기 중후반 한국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 장욱진 화백의 업적을 기리는 뜻 깊은 기념관이 될 전망이다.

 

고 장욱진 화백을 기리기 위한 추모사업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은 장 화백이 서거한 지 7년째인 지난 1997년 6월에 “화백의 인품과 작품세계가 지닌 뜻을 살핌과 동시에 그 뜻이 우리 미술문화계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리를 찾고자 여기 후학들이 모여 장욱진 미술문화재단을 창립하는 바이다.”라는 설립 취지하에 출발하여 16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장화백의 미망인인 이순경 여사가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 재단의 기본을 만들었고 장 화백 서거 21주년을 맞아 재단의 제2도약의 길을 열기 위해 재단설립 시부터 이사로서 큰 역할을 해온 법무법인 ‘바른’의 김동건 대표 변호사가 2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양주 시립 장욱진 미술관 건립은 300평 정도의 규모로 장 화백의 작품세계를 형상화한 이미지로 설계했다. 2013년 2월 준공예정으로 2013년 4월쯤 개막전을 열 계획이다.

김 이사장은 미술관 건립부지로 장 화백과 인연이 있는 남양주의 덕소,용인의 마북리 등 몇 곳을 알아보다가 최종적으로 양주를 선택했다며 양주에는 가나화랑에서 하는 아트밸리, 해태가 운영하는 해태아트밸리, 천문대 등 문화밸리가 많이 조성되어 있고 양주 시당국도 고 장욱진 화백 미술관 건립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양주 시와 함께 사업이 추진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동건 이사장은 “장욱진 선생님의 제자들 가운데도 연로한 분들이 많다. 이분들이 돌아가신 후 일일이 재단법인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이번에 미술관을 건립하면 제자분들의 예술세계도 폭넓게 기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며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사업이 추진하고 있는 방향에 대해서 소개했다.

 

인간과 자연의 섭리를 추구하는 작품세계

일본 강점기하인 지난 1917년 충청남도 연기에서 태어난 고 장욱진 화백은 9살 때 일본 소학생 미전에 출품 은상을 받은 뒤 20살 때인 1937년 조선일보 주최 전국학생미전에서 최고상을 받는 등 일찍이 타고난 예술적 기량을 발휘해왔다.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서 “소녀”로 입선하였고 이후 1959년 (8회), 1969년 (18회) 국전심사위원을 역임하며 국전 초대작가로 작품을 출전했다. 졸업직후의 작품인 <마을>과 <독>은 한국인의 삶의 본색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정서를 농촌의 여인상과 쌀독 같은 대상을 특이하게 단순화시켜 주제로 삼고 있다. 장 화백이 남긴 작품 가운데 부인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진진묘’라는 작품명은 이순경 여사의 법명이다. 장 화백도 非空이라는 법명을 가졌다.

1970년 제작한 이 작품은 장 화백이 1주일간 식음을 전폐하며 몰입하여 작품을 그린 것으로 일화가 유명하다. 바탕화면을 광배를 뜻하는 원형으로 설정하며 전체가 황금빛을 머금고 있는 ‘진진묘’는 장 화백의 득도의 순간을 포착해낸 내재적 실상을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외에도 장 화백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자화상>은 6·25전쟁이 발발한 뒤 폭음에 빠져 있던 작가가 고향인 충남 연기로 옮겨 완성한 작품으로 고향체험을 통해 창작을 이어가는 중요한 영감의 원천을 발견하고 대자연 속에서 절대 고독을 즐기는 자신을 보여주고 있다.〈자화상〉은 회화 작품으로는 드물게 문화재로 지정됐다.

고 장욱진 화백의 작품세계는 덕소시대, 명륜동시대, 수안보시대, 신갈시대 등 지역을 이전하며 새로운 작품세계를 구현해낸다. 초기의 향토성과 해학성에서 덕소시대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독자적 스타일을 구축하고 수묵화적 유화 풍경에서 점차 환상적이며 관념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특히 1990년도에는 ‘삶이란 소모하는 것, 나는 내게 주어진 것을 다 쓰고 가야겠다’는 장 화백의 화두에 걸맞게 초탈한 경지의 작품을 남기고 간다.

 

장 화백을 기리는 전시회 이어져

장 화백의 작품세계를 담은 여러 전시회들이 장 화백의 서거 후 꾸준히 열리며 깨끗한 삶을 추구했던 장 화백의 예술혼을 기렸다. 1991년 12월 “장욱진을 기리는 사람들의 전시회,1995년 4월“장욱진 화집” 발행 및 장욱진전 (5주기 회고전, 호암미술관, 중앙일보사 초대전)이 열렸고 1995년에는 문화관광부 주관으로 “미술의 해 ”에 용인 장욱진 고택 앞에 ‘화가 장욱진 표석“제막을 했다. Oil Painting in the East Asia and Development 초대출품 (일본 시즈오카 현립미술관, 대만 타이베이 시립미술관 1999)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 새천년특별기획전’ (호암갤러리,로뎅갤러리), 200인의 작은 그림전 (선 갤러리) 11월의 문화인물 장욱진 초대전 (문화관광부 이달의 문화 인물선정 기념 (두가헌), ‘장욱진 10주기 현대화랑 초대전’과 ‘한국근대회화 100선 초대출품’(국립현대미술관) ‘장욱진 화백 특별전시회’(연기문화예술회관),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등 수없이 많은 전시가 열리고 ‘새처럼 날고 싶은 화가 장욱진’(나무숲 발행), ‘장욱진 화가의 예술과 사상’ (김영사) 등의 서적도 발간됐다. 2008년 9월 17일 장 화백의 고택(한옥,양옥)은 근대문화유산 404호로 등재되어 현재 장욱진 미술문화재단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장욱진 화백 가옥의 대중화를 위해 지역주민을 위한 전시회 및 교육장소를 제공하고 지역예술문화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존재의 근원을 묻는 본질의 추구

장 화백의 예술은 ‘생명의 추구’로 집약된다. 일상을 걷어내고 존재의 근원적 본질을 끌어내고자 분투했던 예술혼은 생명의 창조, 생명의 진리, 영의 대화체, 인간의 참된 모습, 자연의 참된 섭리로 해석될 수 있다. 옥영식 부산미협학술평론 분과회장은 장 화백의 예술세계를 의식진화의 여정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며 전통미학의 거대한 준령인 ‘선종미학’의 맥락을 계승하여 현대에 새롭게 자기화한 작품을 구현했다고 설명한다.

고 장욱진 화백은 해방 후인 1948년 고 김환기,유영국 화백과 함께 비사실주의 지향의 현대적 창작이념으로서 신사실파 결성을 주도하였고 1954년부터 60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1986년 중앙일보사 제정 중앙예술대상을 수상한 장 화백은 예술적 사색과 자연찬미의 짧은 글도 많이 남겨 1976년 그것들을 묶은 수상집 ‘강가의 아틀리에’를 출간하기도 했다. 「강가의 아틀리에」라는 글에서 ‘예술은 생동하는 생명의 추구이며 나아가 창조라고 한다면 예술은 생활을 잉태하여 창조된 생명을 분만케 하는 원동력 그 자체.“라고 장 화백은 고백하고 있다. 깨끗한 삶을 살기위해 고집했던 장 화백은 작품 속에서도 순수함의 순도100%의 치열한 예술혼을 쏟아내고 있다. ‘작은 그림의 대가’로 불리는 장 화백의 작품은 회화적 가치,질적인 가치로 충만하다. 단순하고 소박한 작은 그림 속에서 무한한 의식의 영역을 확장시키며 크고 넉넉한 정신세계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장 화백과 김 이사장의 특별한 인연

전문법률가의 길을 걸어온 ‘바른’의 김동건 대표 변호사가 장욱진 미술재단의 이사장에 취임할 수 있었던 것은 40여 년 전부터 맺어 온 고 장욱진 화백과의 인연에서 출발한다.

김 이사장은 “70년대 말 처음 현대화랑에서 도자기를 이용한 선생님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고 꾸준히 선생님을 찾아 뵈었다. 어느새 선생님의 식구들과도 가족같은 관계가 되었다.”며 고 장욱진 화백은 한없이 순진하고 소탈한 분이라고 회고했다. 미술문화재단의 초대이사로서 재단 발전에 기여해온 김 이사장은 십여 차례에 이르는 추모전과 전시회 출품, 유작전 등 무게 있는 전시회를 통해 고 장욱진 화백의 미술세계를 재조명한 바 있다. 김 이사장은 이순경 여사가 묵묵히 헌신해온 내조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선생님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이사도 많이 다니셨다. 사립문이 쳐져있고 초가집 같은 곳에서 지내기도 했다. 사모님은 불평 없이 조용히 선생님의 예술활동을 지원하며 6남매를 키우셨다.”며 이순경 여사가 생존해 계셔서 장 화백을 추모하는 재단법인도 만들고 작품들도 잘 관리해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순경 여사는 한국 사학계의 태두(泰斗)로 평가받으며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문교부장관, 대한민국 학술원 원장을 지낸 두계(斗溪) 이병도(李丙燾) 박사의 장녀이기도 하다.

김 이사는 종교, 미술, 음악, 체육, 교육 분야를 아울러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불교신자로 탄허스님께 불교에 대해 배운 인연으로 현재 ‘탄허불교문화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으며 세종문화회관 후원회장을 맡아 공연예술계와도 관련을 맺고 있다. 이외에도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 성신여대 감사, 미디어대학원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있고, 4년간 중앙대학교 이사로 활동하며 두산의 중앙대 인수과정에도 참여했고, 영남대학교 재단이사장도 역임한 바 있다. 지난해 말까지 5년 동안 참여불교재가연대의 상임대표로 봉사하였고, 최근 1월 31일에는 불교포럼의 상임대표로 선출되기도 했다.

 

바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시너지 역할

김 이사장의 다방면에 걸친 협력활동은 자연스럽게 인적네트워크를 쌓으면서 법무법인 ‘바른’의 인지도를 확산시키고 성장시키는 시너지 역할을 했다. 법무법인 ‘바른’이 문화예술분야의 사건을 많이 담당하게 되는 것도 김 이사장의 이런 인적네트워크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 위작 의혹 논란 소송을 맡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합의부로부터 2년간의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이며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경매 낙찰품인 박수근 <빨래터> 위작 의혹 사건 소송을 맡아 위작 의혹을 제기한 격주간 미술전문지‘아트레이드’를 상대로 (주)서울옥션의 ‘명예훼손으로 인한 30억 원 손해배상청구’ 사건에 대해 작품의 진위성을 확인시키고 손해배상은 물리지 않는 합리적 판결을 이끌어냈다. 최고의 전문 법률인으로서 김 이사장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준 다양한 예술분야와의 조우는 법무법인 ‘바른’의 또 다른 이미지이자 브랜드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영향력 있는 변호사들이 마지막 직장으로 선호하는 법무법인 ‘바른’ 은 형사상의 유무죄, 민사소송에서 더욱 특화된 능력을 보이며 ‘바른’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김 이사장은 ‘바른’이 대외자문분야도 강화하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 출신이나 독일 및 뉴질랜드 출신의 유능한 변호사들을 영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에 비쳐진 현 정부 덕택으로 성장했다는 ‘바른’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현 정권과의 밀착관계를 만들어내는 언론의 보도가 부담스럽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3월부터 변호사 개업을 해서 노무현 정부시절에도 많은 성장을 했다.”고 설명했다. ‘바른’에는 현재 140여명의 전문변호사를 비롯해 법무사, 회계사 등 전문가들이 소속돼 있다. 김 이사장은 건전한 변호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로펌에 소속이 돼서 하는 것이 좋다며 “돈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고객의 아픔과 어려움을 진정성 있게 대할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고객을 만나면 모든 에너지를 쏟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김 이사장은 변호사는 사건 의뢰인이 어려울 때 도움의 손길이 가야하는 직업임을 강조하며 사람냄새 나는 법률인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풍요로운 성찰의 시간을 안겨줄 미술관 기대

김 이사장은 법무법인 ‘바른’의 치열한 일선현장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정신적 수장으로서 “사회에 어떻게 봉사하며 회향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며 지금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역할을 통해 법적인 문제점을 조언해주고 필요한 업무를 수행해주는 부분에 대해 그것이 곧바로 사회봉사라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주 시립 장욱진 미술관’ 건립 추진은 그런 맥락에서 더욱 특별하다. 생전에 장 화백이 “화가가 자기 그림만 껴안고, 수장가는 깊숙이 그림을 감추는 기류는 크게 잘못되었다. 좋은 그림일수록 공공기관에 기증되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소망했던 바를 이루는 전시공간으로 의미를 더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바른’이 더욱 사회의 정의롭고 투명한 중심역할에 설 수 있도록 구심점으로서의 김동건 대표의 역할과 깨끗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추구했던 고 장욱진 화백을 기리는 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의 역할은 분명 조화롭게 맞닿아 있다.

양주시 장욱진 미술관의 성공적 건립에 박차를 가하면서 내면의 풍요로운 성찰의 시간을 많은 이들에게 안겨주는 가교역할을 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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